한사모 학술위원. 우실하 교수 !

요하문명의 새로운 발견은 한국 상고사-고대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논의를 위해서 먼저 4가지 자료를 제시한다.
첫째, 중국 고고학계의 대원로인 고(故) 소병기(蘇秉琦: 1909~1997) 선생은 (1) 요하문명은 홍산문화 후기(BC 3500~3000)에 ‘고국(古國) 단계’에 진입하여 황하문명보다 1000년 앞서며 (2) 요서 지역에서 황하문명 지역으로 내려와 요-순-수 시대의 뿌리를 이루게 되며 (3) 중원의 요-순-우 시대에 요서 지역에서는 하가점하층문화(BC 2000~1500) 시기에 대규모의 석성(石城)이 보여주듯이 독자적인 ‘방국(方國) 단계의 대국(大國)’이 출현하였으며 (4) 요서 지역이 바로 서경(書經) ‘우공편(禹貢篇)’에 나오는 구주(九州)의 중심지지며 화화족의 조상인 황제(黃帝)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설지강(薛志强)은 (1) 요하문명은 ‘염제와 황제의 옛 땅’이자 ‘전욱의 옛 땅’이며 (2) 황제족과 전욱족이 중원 지역으로 남하하여 황하문명과 융합되며 (3) 서요하 지역에서는 홍산문화 후기에 ‘문명고국(文明古國)’이 있었으며 (4) 요서 지역에서 이동한 세력이 하(夏)를 대체하는 상(商)을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셋째, 2015년 12월에 발간된 산서성 임분시 양분현(襄汾县) 도사진(陶寺镇) 도사향(陶寺鄕) 도사(陶寺)유적에 대한 발굴보고서(양분도사: 1978~1985.고고발굴보고)는 도사유적이 전설로 전하던 요(堯)임금의 왕성(王城)인 평양(平陽)임을 밝히고 있다. 도사유적은 (1) 총면적 430만 평방미터 (2) 내성과 외성을 합친 성안의 면적만 280만 평방미터에 달하며 (3) 내성인 궁성터만 13만 평방미터(동서 470m, 남북 270m)이며 (4) 연대는 BC 2500~1900년이며 (5) 세계 최초의 천문관측대, 동아시아 최초의 문자, 동아시아 최초의 동으로 만든 방울(銅鈴) 등이 발견되며 (6) 초기의 왕성은 ‘BC 2400년경 조기의 사전(史前) 국가의 수도(the capital city of early prehistoic state around 2400 BC)’로 보고 있다.
넷째,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와 관련하여 (1) ‘고(高=堯: 요임금-필자)와 같은 시기이다(與高同時)’ (2) ‘당고(唐高: 요임금-필자)가 즉위한 지 50년(唐高卽位五十年)’이라고 밝히고 있다. 요임금의 왕성이 밝혀지고 있는 이상, 고조선의 건국연대 BC 2333은 단순한 허구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소병기나 설지강의 논지에서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을 황제족으로 끌고 가는 논의를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이들은 (1) 홍산문화 후기에 ‘고국 단계(소병기)’에 진입하고 이미 ‘문명고국(설지강)’이 있었으며 (2)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는 ‘방국 단계 대국(소병기)’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청동기시대에 들어선 하가점하층문화 단계의 ‘방국(方國) 단계 대국’은 어떤 나라일까? 중원 지역에서 발견된 도사유적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전설적인 요임금의 왕도인 평양(平陽)으로 비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학자들은 요서지역에 있었다는 ‘방국 단계의 대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국명을 비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신화를 포함한 어떤 문헌기록에도 요서 지역에서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 건국된 ‘방국 단계의 대국(소병기)’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록에는 이 시기에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이라는 정식 국가명칭이 등장한다. ‘8조 금법’을 갖춘 노예제 사회 국가인 고조선이 있었다. 더욱이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실제 요임금의 왕성으로 비정된 도사유적의 발견으로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필자는, 중원 지역에서 요-순-우시대가 열릴 때, 요서 지역에서 존재했다는 ‘방국 단계의 문명 대국’이 단군조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의 고고-역사학계에서는 요하문명에 대한 각종 연구들을 아직도 중국학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제라도 요하문명과 한반도 상고사-고대사와의 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1)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화화족의 조상이라는 황제족이며 (2) 후대에 등장하는 이 일대의 모든 북방 민족들은 황제의 후예라는 중국학계의 견해가 국제학계에서도 그대로 정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한국학계에서 좀 더 많은 학자들이 요하문명, 홍산문화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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