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근거지, 요서 지역

백제의 근거지, 요서 지역 <16>
안개속의 그 이름, 백제와 ‘구다라’ ②

(3) 백제의 근거지, 요서 지역

이제 베일에 쌓여있는 ‘백제’라는 명칭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삼국사기』에서는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로 보좌를 받았기 때문에 나라이름을 십제(十濟)라고 하였다. … 후에 백제(百濟)라고 고쳤다.”라고 합니다. 이병도 박사는 그 위치를 현재의 경기도 광주와 남한산성 일대라고 합니다.11) 즉 백제를 처음에는 십제로 부르다가 성장하면서 백제로 부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당나라 태종 당시(636년) 편찬된『수서(隋書)』에는 “백제는 처음 백가(百家)가 모여 바다를 건넜다. 그로 인해 백제(百濟)라고 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12) 그러니까 백가제해(百家濟海)를 줄여서 백제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백제가 멸망(660)하기 전이니만큼 아마 백제 사신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들은 말을 기록했을 수도 있겠군요.

이 기록에 대해서 이병도 박사는 후대 백제인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단정하였습니다.13) 즉 이병도 박사는 흔히 십제(十濟)에서 백제(百濟)로 변모해갔다는 일부의 사서의 기록은 후대 백제인들의 조작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병도 박사는 백제 초기의 나라이름이 ‘위례’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14) 여기에는 국어학계에서 말하는 것처럼 십(十)이나 백(百)이나 우리 고유의 고대음은 모두 ‘온’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십(十)이나 백(百)이나 모두 같은 말(‘온’)인데 사서(史書)에서처럼 마치 십제(十濟)가 백제(百濟)로 진화한 듯이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백제의 국호는 신라나 고구려와는 달리 백제(伯濟), 백제(百濟), 위례국[慰禮(忽)國], 남부여(南夫餘), 응준(鷹準), 라투(羅鬪) 등으로 변모하는데 이 국호들은 일관성이 없고 어떤 계통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백제는 그 시조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데다 국호도 여러 번 바꾼 것도 특이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백제인들이 틈만나면, 자신들은 부여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왕 이후 나타나는 남부여라는 국호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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