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뿌리_정길선

#한뿌리_정길선
#투르크 #투르크계 #키르만셀주크 #카부르트 #말리크샤 #투란샤 #이란샤
이란 남부 키르만과 아라비아 반도 남쪽의 오만 지역은 차그리 베이의 아들인 카부르트(Kavurt)에 의해 정복된 후 이 지역을 통치해 왔다. 대 셀주크 왕조의 알프 아르슬란 술탄이 죽고 이복동생인 말리크샤가 술탄이 되자, 카부르트는 술탄 제위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1075년 말리크샤는 셀주크 왕조 접경에 있는 카프카스 지방에 대한 원정을 단행하였다. 이는 카부르트 베이(Kavurt Bey)의 반란 평정을 위해 아르툭(Artuk) 베이가 아나톨리아를 철수한 뒤 셀주크 왕조의 통치권을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투르크멘들의 세력이 강성해졌고, 특히 카부르트를 지지했던 일부 야브구 셀주크 분파들이 새로운 술탄 정부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리크샤는 대부분의 야브구들을 이 전쟁에 동원했고 카부르트를 지지하던 야브구들은 하마단 지역으로 들어가 항쟁했다.
말리크샤는 이들을 평정하기 위해 하마단 지역으로 진입했고 카부르트는 말리크샤와 격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여 사로잡혔고 이내 처형되었다. 카부르트의 사후 키르만 투르크의 새로운 통치자는 아들인 키르만 샤가 되었으나, 말리크샤는 키르만 셀주크 왕조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1076년에 키르만 샤를 폐위시키고 카부르트의 차남(次男) 술탄 샤를 새 통치자로 내정했다.이로써 말리크샤는 키르만 셀주크 왕조에 대해 직접적인 내정 간섭을 시행했고 과도한 공물과 부역에 동원하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키르만 샤의 장남인 마흐무드를 마르브로 데려와 대 셀주크 왕조에서 정사를 관장하도록 하였으나 사실상 볼모나 다름없었다.
1085년 말리크샤와 대 셀주크 왕조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오우즈와 호라즘샤에 대하여 동맹을 제의했고 이들과 함께 대 셀주크 왕조를 공격하기로 모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의는 곧 발각되었고 말리크샤에 의해 키르만 샤는 폐위되었다.말리크샤는 카부르트의 삼남(三男) 투란샤(Turanshah)를 옹립하였고 키르만 샤는 반역죄를 물어 마르브로 압송했다. 이는 키르만 셀주크의 통치력이 대 셀주크 왕조의 완전한 통제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력은 키르만 셀주크의 자주성이 상실된 부분도 있지만 반면 샤의 통치력이 대 셀주크의 보호 아래에서 안정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투란샤는 대 셀주크의 여러 조건도 충족시키면서 정치적으로 안정화를 꾀했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1092년 말리크샤가 사망하자 어느 정도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이란 남부지역을 벗어나 아라비아 반도 지역으로 진출하여 사막 지대를 장악했고 사막 대상 무역을 독점으로써 대 셀주크 왕조에 복속되어 있던 경제력을 회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1097년 투란샤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이란샤(Iranshah)가 등극했을 시기에 오늘날 오만 공화국 지역까지 세력권이 형성되어 바그다드에서 메카로 들어가는 길목도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써 메카로 성지순례 하는 무슬림들을 상대로 교역이 계속 성공됨에 따라 키르만 셀주크 왕조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회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Top